등산 및 국선도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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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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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조의선인(早衣仙人)제도가 있었으니 조의선인은 고구려가 사해(四海)에 맹위를 떨치고 그 세력이 능히 수나라, 당나라를 물리칠 정도의 국력을 갖게 하는 데 초석이 되었으니 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때의 조의선인으로 선발되었던 을밀선인(乙密仙人) 문하에는 조의선도 3,000명이 다물방지가(多勿邦之歌)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다물:"되물린다"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시대의 태평성국으로 복고하겠다는 의지를 뜻함)  조의선인으로 을지문덕, 양만춘, 을소, 을파소 등의 많은 인재가 배출 되었다.
 
신라에는 화랑도 제도가 있었으며 화랑도는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 37년에 창설되었으며 화랑도는 명산 대첩을 찾아다니면서 심신을 연마하고 교양을 쌓았으며 국가가 필요할 때에는 호국의 무사정신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을 바쳤으며, 생활의 규범을 익히고 전통을 존중했으며 신의와 협동정신을 배양하며 고도의 인격을 겸비하고 풍류와 멋을 지니고 仙人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文武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했다.
화랑에는 김유신, 모랑, 비랑, 사다함, 관창, 원술 등 훌륭한 명장들이 배출되어 후일 삼국을 통일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국선도는 조선시대에 와서 양반, 사대부들의 심신수련법으로 널리 알려 졌으며 국선도 수련의 한 부분으로 퇴계 이 황(李 惶)선생의 활인심방조체법(活人心方操體法)도 성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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